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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지의 옥상 과수원]
[아버지의 옥상 과수원]
                                                         김정웅

새벽부터 아버지는 옥상을 올라 가셨습니다.
아들이 보고 싶다고 한 과수원을 만들어 주기 위해 허리가 아프시어 두 번이나 수술을 받으신 몸인데도 손수 흙짐 지고는 옥상으로 올리시더니 조금씩 가꾸시던 20평 남짓한 작은 옥상 과수원이 6년이 지난 지금은 할일이 꽤나 많아 졌나 봅니다. 과실수는 2년이 넘으면 꽃이 피지만 옥상 과수원이라서 인지 4년이 지나서야 첫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릴 때는 신기하기만 하였습니다. 그저 투정 부리고 싶은 마음에 사과나무가 보고 싶다고 한 것 뿐 이였는데 그런 저에게 아무런 타박도 안 하시고는 도심속에 과수원을 만들어 주신 아버지에게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아침 출근 시간이 저는 하루 중 가장 행복하고 또 행복합니다.

1996년 군을 전역 후 비록 전문대지만 이듬해부터 학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컴퓨터가 막 상용화 되는 시점이라 제가 다닌 사무자동화과는 꽤나 인기가 있었습니다. 수업도중 머리가 심하게 아파 병원을 찾았는데 이것저것 검사하고 사진도 찍던 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되더니 의사선생님은 처방이 아닌 부모님을 찾았고 병원을 달려오신 어머니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에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최종 병명은 뇌종양 말기로 4개월에서 길면 반년정도만 내가 살수 있다는 시한부 판정 이였습니다. 암세포가 목에 까지 전이 되어서 수술도 어렵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를 부모님은 받아 드리지 못하셨습니다. 하루 빨리 수술 날짜를 잡은 1998년 5월12일은 너무나도 잔인하게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파괴 시킨 날 이였습니다. 차라리 심장을 쪼개놓았으면 나았으련만 수술은 성공했지만 그날부터 7개월간 식물인간상태로 있었고 기적적으로 의식이 돌아 왔을 때는 등 허리부근에 욕창 이란 것이 커져서 몸이 썩어 가고 있는 시취와 고통을 느껴야 했고 목은 반 절개 되어 물 한 모금 삼키지 못 하였습니다. 한쪽시력과 양쪽 청각을 잃었으며 전신이 마비되어 혼자서 식사도 할 수 없어서 옆구리에 호수를 연결 하고 주사기로 식사를 해야 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있었습니다.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나를 껴안은 어머님은
“안보이면  내 눈 띠서 주면 된다, 안 들리면 내 귀 띠서 주면 된다 됐다 됐어 내 손으로 국 한 그릇 먹일 수 있고 따뜻한 밥 한 끼 먹일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 됐어” 하고 목 놓아 한없이 흐느끼셨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는 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더 이상 입원이 불가능 하여 퇴원했지만 집에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나는 하늘이 창문 크기 만 하다고 여기는 게 하루 일과였습니다. 며칠 뒤에 동사무소에서 가져온 연두색 바탕의 장애인 카드에는 지체 1급 청각2급 평형 2급 장애가 명시 되어 있었습니다. 이날부터 장애는 나에게 3가지 훈장이 되어 어눌하지만 말만 하고 투정만 부리면 모든 것이 바라는 대로 되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뭔가가 떨어지며 팔목을 감고 있던 손목시계 유리를 깨트려 갈아달라고 아버지에게 건네었고 돌아선 아버지가 한참을 우둑 서 계시다가  물기 젖어 목소리로 혼자서 울며 흐느끼신 말소리가 청각을 잃은 저의 귀에 한순간 들여 버렸습니다.

“오늘은 아비가 해 줄 수 있는데 내일은 누가 해 줄 수 있으려나?”

삼일 밤낮동안 ‘내일은 누가 해 줄 수 있을까?’ 라는 것만 생각했고 아무도 해줄 사람이 없다는 정답을 찾은 순간 이유도 모르고 끝도 모를 설움에 눈물만 흐르기 시작 했습니다.

그날부터 재활에 매달렸습니다. 재활이란 단어 자체가 그렇게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몰랐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포기 할 거라고 울고 말았습니다. 혼자 벽을 잡고 일어서는데 꼬박 1년이 걸렸고 아무것도 잡지 않고 걸을 수 있는데 까지 다시 3년이 걸렸습니다. 지체 1급 장애를 재판정 받아 지체 4급 까지 낮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장애인에게 있어 정말로 어렵고 넘기 힘든 장벽은 취업의 길 이였습니다. 장애를 입었다고 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일자리를 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능력을 가질 때 까지 멈추고 기다려주는 시간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장애인 직업능력 개발센터에 가고 사무자동화 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 했지만 취업에서 도움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청각장애로 인해 전화사용이 어려움이 있는 상태여서 사무직으로는 채용하려는 곳은 단 한곳도 없었습니다.  불편해진 신체로 생산직은 엄두를 내지도 못하였고 일하고 싶다는 마음만 깊을 뿐 사회로 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집안에서만 방황하던 절 보시던 아버님은 동 사무서로 시청으로 장애인 협회로 하루 가 멀다하고 다니시더니 ‘장애인 행정 도우미’ 라고 하는 것의 신청서를 받아 오셨습니다.
주민센터 나 행정 기관에서 하는 일이라고 명시되어 있어서 어려울 것 같다는 지레짐작으로 실망감이 더욱 커지다가 중증 청각장애인에게 가산점 을 더 준다는 한줄 글귀에 놀라움 반 두려움 반으로 지원서를 작성하고 접수 하였습니다.

2009년 5월 25일은 내 주위에 모든 것들이 더욱더 신비하게만 보이던 날 이였습니다. 지난 10년간  대문 밖은 내가 접근 할 수 없는 또 다른 성역의 세상 이였습니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달랐습니다. 새벽부터 깨어나 잠을 이루지 못한 건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 보다 반듯이 해야만 하는 의무 과제였던 것입니다. 첫 출근 시간이 다가와 옥상 과수원에서 사과나무를 돌보시던 아버지 에게 “다녀올게요. 라고 인사를 할 때 무뚝뚝한 아버지는 아무런 답변도 없으셨지만 자신도 모르게 분주하던 움직임을 한순간 멈추시고는 소매 끝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시고 말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만들어 주신 장애인 행정도우미라는 길을 지금 1년 넘는 시간동안 걸어가고 있습니다. 한사람의 민원을 소중히 여겨 친절히 안내해야 하고 신청서류 하나를 더 정확히 보는 것 도 중요 하겠지만 이 일로 인해 스스로 어떤 곳에서든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 큰 대로를 걸어 갈수 있는 나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 하다고 생각 합니다 불가능 할 거라고 여겼던 옥상 사과나무 과수원을 만들어 보여 주신 아버지가 진심으로 말씀 하시고 싶은 뜻은 이것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

아버지 사랑합니다.


* 이 글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애인 일자리 수기'에 입상한 글로,
글쓴이의 동의를 얻어 게재하였습니다.  게재 수락에 감사드립니다.

몇번을 읽어도 구구절절 가슴이 벅찼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늘 투정부리는 저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였습니다.
어쩌면 저에겐 연민으로 지나칠지 모르는 이 순간에도 현실과 싸워 이겨가시는
정웅님의 모습에 진심 어린 격려와 응원을 보냅니다.
좋은 시책의 제정으로 장애인들과 아픔을 보다 깊고 많이 나눌 수 있는 세상이 되길 기원합니다.  홈지기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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